많은 일이 있었던 달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 5.18
그 한가운데 숨죽이고 있었던 기억
단지 학교를 가지 않는 다는 것만이 좋았던 기억
MBC방송국이 불타는 것을 단순히 불구경으로서만 바라봤고.
조선대 뒷산쪽으로 총알이 핑핑 날아다닌 것 역시
오빠 몰래 옥상에 올라가 덜덜 떨면서 바라봤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것을 어찌 보느냐고?
^^*
그 당시 처음 알았던 것
탄창의 마지막 총알이 나갈 때는 야광이라고...
해서 시내쪽에서 총을 쏘면 마치 불꽃 놀이를 하는거 마냥
씽씽 길게 줄을 그으면서 나가는 것이 보였었다...
물론 밤중에 위협사격하는 듯
오빠가 하루에 한번 정도 조심스럽게 나갔다가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으면서
우리 집에 갇혀있던 식구들은
당시 대학생이였던 세째언니는
전날 도청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시가 행진을 했다눈~~
계엄령이 내려지고...
그리고는 다음날 부산의 큰언니집으로 여행을 떠났고...
당시 장흥에 근무하셨던 울 아부지는 날마다 전화를 했지만
통화 두절이였고...
날마다 TV에서는 폭도들에 의해 생활이 곤란하다는 방송을 해댔었지만
먹고 사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던 생활.
군대 갈려고 들렀던 사돈까지
우리 지산동 집은 숨죽인 식구들이 있었다.
오빠, 올케, 그리고 넷째언니와 나 , 사돈까지.
흉흉한 소식만 들어오는 가운데
우리는 가장 작은 안쪽 방에 담요까지 치고
민방위 훈련하듯이 불 빛이 새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충장로와 가까운 곳이 아니였기에.
그리고 마침내 상황이 종료되어 나간 학교에서는 딱 한명 동기가 학교엘 안나왔더군...
도청에서 밥을 해주다 잡혀 갔다나?
물론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 후로 두어달 만에 학교엘 나왔는데
그 아이는 말이 없었다.....
한 가운데 있었음에도
전혀 바람을 겪지 않았던 오월이였다...
지금 새삼 그 당시의 자료를 보다보니
참으로 어렸었던 시간이였다...
시국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지금도 역시 그렇다
주변 돌아가는 사정은 모르면서
내 발끝만을 보고 넘어가는
혹은 그나마도 못 보고 넘어가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