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깜마미의 공간

이런 일 저런 일

소년이 온다

이지222 2024. 11. 2. 23:29

주문한지 이주일 정도를 기다려
책을받았다.

열여섯의 삼월
엄마가 돌아가셨다.
큰언니, 둘째 언니는 결혼했고
오빠,셋째, 넷째 다섯째 인 나.

열일곱의 나
년초에 결혼한 오빠와 새언니,  세자매,
그리고 오빠의 처남...

오월 17일 태극기를 들고 도청앞을 걸었던 셋째언니는 그날 저녁 오빠에 의해 큰언니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보내졌다.
대학 3학년...
운동권도 아니였던 언니는 우연히 도청앞에  있다가 행진에 참여했다고.
대학 1학년이였던 넷째언니,
오빠의 처남 대학 3학년,
그리고 고 1이였던 나.

그렇게 우리는 지산동 집(조선대 뒷쪽이다)에 갇혀 있었다,
오빠에 의해..

18일 오전 학교에서 갑자기 하교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환한 낮에 집으로 오는 3번 버스를 타고 산수동을 지나
오는데 법원앞으로는 안간다고 중간에 내려주더라.
길에는 간간히 군트럭이 지나다니고 법원앞에도 경찰이 총들고 지키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집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이후의 기억은 단편적일 뿐.
저녁이면 집에서 가장 작은 방 창문과 방문에 담요를 쳐서 불빛이 새나가지 않게 하고 다섯식구가 모여 있었다.
어쩌다 우리 가족이 모여 놀던 옥상엘 올라갔을 때 MBC 방송국이 벌겋게 불 타고 있었고
방송에선 괴뢰들이 불질렀다고 했다.
진실을 방송하지 않는 기자들에 대한 응징이라고 했다.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핑핑 날아가는 총알, 탄창의 마지막 총알은 야광이라고...
처음 알았다..
낮에는 오빠가 걸어서 도청 근처까지 나가 소식을 듣고 왔다.
어린 친구들이 죽었다네.
전대 근처에서 여자가 대검에 찔려 죽었다더라 등등.
그동안 새언니는 근처 가게에서 장을 봐 와서 먹거리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마는 여전히 라디오에서는 먹을게 없어서 굶고 있다고 했다.
무정부 상태라 혼란스럽다고 했으나 우리는 오히려 질서속에서 살고 있었다.

마지막 함께 해 주세요 하는 방송이 멀리서 들려왔지만 우리는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시간을 지나 학교에 갔을 때 시골 어딘가에서 유학 왔다던 동기 하나..
여름방학도 지나 한참 뒤에 학교에 나왔다.
이름도 기억 못하지만 반쪽이 된 아이..어딘가에 끌려갔다 왔다는 소문.그리고 투명인간이 된 듯 존재감이 없었던..아이
진실은 나도 모른다.

오빠가 전해주던 소식
상무대에 시체가 쌓여있더라.
전일빌딩에서 아버지 친구분이 총 맞으셨다네..
나중에 아버지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사실이였다.

공수부대가 점령한 뒤
통신이 재개되고 걱정되신 아버지가 오시고, 부산갔던 언니도 돌아오고,..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얼마간은 그랬다더라~~는 말들로 어수선한 시절...

그리고 대학을 다닐 때까지도 최류탄이나 데모, 하얀 셔츠를 안에 받쳐입고 점퍼를 걸친 짭새라 불리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그 현장에 나는 참여하지 못 했다..
학교와 집..
데모없을때 충장로의 우다방(우체국을 그리 불렀다)
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그리 살아왔다.

부산에 살던 형부와 언니는 우리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방송에서 하던 이야기들..
우리는 폭도들이였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때의 이야기는 하지않는다

그 이야기를 한강이 대신 해 주었다..
참 감사하다..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서투르고 부족하지만 그때의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시간을 건너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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